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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보라카이 해변의 특별한 요가수업

이번 보라카이 여행은 조금 특별한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가선생님인 이모와 동행하는 여행이라
보라카이의 요가학원에서 요가수업을 받고 싶었지만 현지 사정으로 무산되었고 
소박하지만 우리끼리 매일 아침에 공복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게 언제부터였을까
2년전쯤 필라테스/요가 센터 회원권을 끊었을 때였나 
아마도 센터에서 만난 요가선생님 덕분이였던 것 같다. 

요가선생님은 초보 느낌이 살살 나는 젊은 분인데 
회원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온힘을 다해서 잡아주고 
본인의 체력과 열정을 모두 쏟아부어서 수업을 해주시는 분이였다. 

그 선생님 덕분에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몸 쓰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요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는데 
내 주변에, 그것도 이모가 요가선생님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아무데나 요가매트만 펴면 수련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다. 

경사가 없는 평지일것 
해가 너무 쨍하지 않은 곳, 가급적이면 그늘일 것 
사람이 너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일 것 

그러다보니 우리는 점점 해변가 안쪽 구석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리조트 가드와 강아지 몇마리만 쉬고있는 한적한 해변가에 매트를 펼쳤다. 

이모의 요가수업은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완벽했고 대단했다. 

센터에서 하는 플라잉요가/필라테스를 그래도 2년가까이 들어봤고 
요가선생님들 추천으로 원데이클래스도 들어봤는데 
이렇게 완벽한 설명의, 높은 퀄리티의 수업이라니!

나는 통통한 체형이라서 
요가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따라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다. 
엉덩이 뒤에 손을 짚으라고 하는데 손이 바닥에 안 닿는다거나 
골반을 들으라고 하는데 골반이 안들린다거나.. 

그렇게 안되는 동작에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보통 요가선생님들은 애써 나를 못본척 외면하거나.. 
동작이 될때까지 나를 잡고 내 몸을 찢거나 늘려주시곤 했는데 
이모의 수업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서 더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하고 완벽한 선생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에 집중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였는데 

보라카이 해변의 햇빛은 매우 뜨겁고
태풍이 오기 전인 바닷가의 바람은 시원하지만 강력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요가매트와 함께 모래가 바람에 휘날렸고 

요가는 깊게 호흡하는 동작이 많은데 
아주 고운 보라카이의 모래는 내 눈, 코, 입에 모두 존재했고 
깊게 숨을 마시고 내쉴때마다 걸그럭거리는 모래와 바다의 소금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눈에/입에/코에 들어간 모래를 빼내랴 
바람에 접힌 요가매트를 펼치랴 
요가수업을 기록해보겠다고 촬영중인 삼각대는 자꾸만 넘어진다. 

결국 나는 수업을 중간에 포기하고 
이 대단한 수업을 조금이라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역할을 선택했다. 

첫날 수업이 끝난 후, 
바람과 모래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에서 요가를 할 수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장소를 물색하며 돌아다녔지만,

태풍으로 인해 일정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실내에서 요가수업을 하기엔 숙소의 공간이 부족하고 
야외는... 밖에 1분만 서있어도 쫄딱 젖는 상황이라 감기나 안 걸리면 다행이였다. 

이모가 귀국하기 전날 
비도, 바람도, 모래도 모두 무시하고 파도가 치는 해변에서
매트도 없이 아주 짧은 인사이드 플로우 클래스가 다시 열렸다. 

나는 어쩌면 첫날 했던 수업보다 더 많이 내려놓고 즐겁게 참여했던 것 같다.
바닷물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고 
아주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도 괜찮았다. 

파도가 쳐서 물벼락을 맞아도
발이 모래속으로 쑥쑥 빨려들어가서 중심을 못잡고 넘어져도 즐거웠다.
자연속에서 요가를 통해 명상을 하고 마음을 수련한다는건 이런걸까 싶지만
그러기엔 내 레벨이 너무 낮다는걸 스스로 알고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그녀의 표정은 
즐거웠다가 진지했다가 힘들었다가 무거웠다가 
천개만개로 계속 바뀌었다. 

떠나기 전날이여서 였을까 
아니면 생각하고 준비한 만큼의 수업을 하지 못해서 였을까 
아니 어쩌면 둘다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보라카이에서 아주 특별한 요가수업을 들었고(했고) 
다음번 여행에 혹시 또 요가매트를 가져가게 된다면
그때는 가능하다면 실내에서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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