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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동물친구들과 함께하는 완벽한 저녁식사_Levantin

이상하리만큼 여유롭다고 생각했던 첫날 일정은
의외로 여유시간이 없이 촉박하게만 흘러갔다. 

일정은 틀어지고, 점심도 부실했기에 저녁은 맛있는 걸 먹고싶었는데 
마사지를 다녀오고 나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D몰까지 걸어가는건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다. 

숙소 주변에서 대충 밥을 먹는게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건
오전에 이미 경험을 했지만
폭우가 쏟아질것 만 같은 늦은 저녁이라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에 차는게 없다면 
배달되는 식당들이 있던데 배달을 시켜먹을까? 

아무리 배달의민족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라지만 
멀리 필리핀까지 와서 배달을 시켜먹기엔 뭔가 아쉬웠던 세사람은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 그렇게 터벅터벅 또 밖으로 걸어나왔다. 

낮에 돌아다니며 봐두었던 수영장이 딸린 예쁜 바와 
비글이 귀여웠던 사람이 많은 식당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약간은 들뜬 마음도 잠시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때면 현실의 나는 인천공항에 두고 오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풍경과 낯선 공간에서 온전히 그것들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들뜨고 설레고 행복한 마음만 온전히 느끼고 오길 원하는데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그게 쉽지 않았다.

오락가락 변덕이 들끓는 날씨 탓 도 있었겠지만 
잊을만하면 걸려오는 아빠의 연락이 자꾸만 나를 현실로 데리고 간다. 

막상 받아보면 특별한 용건도 없거니와,
선호하는 주제는 더더욱 아니다. 

내가 왜 해외여행까지 와서 
지역감정이야기, 특정 정치인의 이슈거리와 비난을 들어야 하는걸까 
아빠는 그렇게 평소에 들어도 버거울만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통화를 하는 사이 언니와 이모는 비글이 있던 예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낮의 비글과 교대를 한 걸까 
순둥한 누렁이 한마리가 바닥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느듯하고 편안해보이는 강아지 한마리 덕에 마음이 같이 편안해진다. 

치킨이나살과 피자를 적당히 먹으면서 강아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하얀 수염이 매력적인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언니는 출발전부터 고양이를 만나면 주겠다던 츄르를 가지러 
피자를 내려놓고 급하게 숙소로 달려갔고 
나는 고양이가 가기 전에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얘 왜 츄르를 안먹지?]
어느새 호다닥 가져온 츄르를 줬는데 치즈냥이는 먹을줄을 모른다 

자세히 보니 그건 츄르가 아니라 영양제였다ㅋㅋㅋ
츄르보다 이게 더 좋은거라고 꼬셔보지만 치즈냥이는 단호했고 언니는 시무룩해졌다. 

주문도 안하고 테이블만 차지하던 특별한 손님은 
가게를 지키던 경비견에게 딱 걸려버리고 말았고 
그렇게 둘 사이에서 잠깐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안시킬거면 얼른 가라멍!!!!!]
[테이블에 앉는건 무슨 매너냐멍!!!!]

가만히 들어보니 멍멍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고양이는 기지개를 한번 쭉 펴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강아지에겐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고 
우리는 떠난 고양이가 아쉬워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빗속을 뛰어다니고 
도마뱀(찡쪽)이 의자 밑을 기어다닌다. 

이 식당은 아무래도 음식 보다는 동물친구들에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다. 
볼거리가 많아서 즐거운 식당이다.

비가 조금 그쳤을까 
어디선가 또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엔 까만 고양이다. 

언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뜯어두었던 츄르(라고 쓰고 영양제라고 읽음)를 줘봤고 
까망이는 역시 치즈보다는 똑똑하다. 

[음~ 건강한맛~ 딱 내 취향이다냥] 

까망이는 영양제 한포를 말끔하게 다 먹어치웠고 
맛있는걸 준 인간들에게 셀카까지 허락해줬다. 

팬서비스가 아주 훌륭하다. 

바 테이블 한켠에 고양이용 사료와 물그릇이 놓여있는걸 보니
아까 쫒겨난 노란손님과 까망이는 이곳의 단골인 것 같다. 

친절한 사장님은 주방이 마감해서 더 추가주문은 힘들지만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편하게 머물다 가라고 얘기해주었고 

친절한 사장님과 동물친구들 덕분에
우리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왔다. 

각자의 이유로 지치고 조금은 울적할 뻔 했던 저녁식사는 
아주 행복하고 기분좋은 저녁식사로 바꿔준 고마운 식당에
오랫만에 트립어드바이저를 켜서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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