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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너무 좋았지만 다시 가지 않을 것 같은 숙소 - Palassa Private residences

칼리보 공항에서 보라카이까지는 정말 많이 멀다.

공항에서 항구까지 차로 1시간 30분정도 
항구에서 다시 배를 타고 15~20분 
그리고 다시 툭툭(트라이시클)을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는 저녁비행기라 공항에 도착시간이 저녁 11시가 넘는 시간이라 
별도로 픽업/샌딩 업체를 예약했었다. 

공항 근처에 있는 조그만 라운지(라고 쓰고 카페라고 읽어도 될듯)에서 
같이 이동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픽업/샌딩을 예약한 여행사 직원이  숙소 바우처를 전부 달라고했다. 

보라카이에 들어가기 전에 항구에서 승선 서류 작성을 해야하는데
이 서류에 숙소정보나 여권정보같은것들이 적어야 하고 
항구에 도착해서 이런 절차를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에 
항구에 가 있는 직원이 미리 서류를 작성해서 승선수속을 마쳐놓기 위해 바우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였는데 

우리는 2개의 숙소를 예약했었고
첫날 도착해야 하는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곳이라 바우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 하다가 [음 첫날은 바우처가 없으니 둘째날 숙소 바우처를 줘야겠다]고 말했고 
언니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직원에게 첫날 숙소 바우처가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직원은 [네 숙소 바우처 다 주시면 되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픽업/샌딩 예약 시 여행사측에 첫날 숙소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등을 사전에 다 전달해둔 상태였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도 첫날 데려다주는 숙소가 여기 맞는지 
픽업/샌딩 위치같은것을 여행사에 연락해서 확인했던터라
승선을 위한 서류는 둘째날 숙소 바우처를 전달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전후 상황을 모르는 언니는 직원이 보라카이 도착 후 데려다줄 숙소의 바우처를 요구하는데 
내가 급한 마음에 다른 숙소 바우처를 주면서 일을 대충처리한다고 느꼈는지
 
[우리 급할거 하나도 없으니 천천히 해~ 오늘 숙소 못들어가고 날 새도 괜찮으니까 
차분하게 문제 안생기게 정확하게 처리하자] 라고 얘기했는데
상황을 설명해보려고 했다가 결국 언니의 화만 돋구었다. 
실수해놓고 내가 맞다고 우기는 것 같았나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내내 마음이 복잡하다. 
속상하고 후회도 되고 약간은 답답하기도 하고 
모두가 잠든 어두운 차 안에서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는 언니와 
속모르고 코까지 골며 깊게 잠든 이모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과 눈물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심하게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와 
인적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밤바다의 고운 모래와 잔잔한 바닷물 
깨끗하고 예쁜 숙소까지 진짜 완벽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우와아아아~~ 하고 해변가로 달려가거나 
내가 진짜 좋은 곳에 왔구나 라는 만족감에 가득차 있었을텐데 
그러기엔 나는 여행 전부터 지금까지 실수한 게 너무 많아서 
언니에게도 이모에게도 죄인이였다.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계속 실수하고 여행을 시작전부터 망칠뻔 해놓고 
혼자 침울해져서 다른 사람 기분까지 잡치게 하지 않으려고
가방을 더 반듯하게 놓고, 어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최선이였던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이모는 커피 한잔 마셔야겠다고 얘기하면서 
숙소에 있는 캡슐커피 머신기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끙끙대느라 바쁘다. 
[이거 커피 그냥 수돗물로 끓여도 되나?]
[이거(커피캡슐) 왜 안들어가는거지?]

필리핀의 물은 정수가 잘 되지 않고 석회질이 많아서 
수돗물을 마시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녀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머신기를 조작해주는 동안
 
이모는 1.5L짜리 물을 뜯었고, 
커피캡슐도 1.5L의 생수도 다 추가요금이 부과된다는 걸 알게된 그녀가
언짢아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다. 

길기도 참 길었던 밤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우기라서 그런지 날씨도 적당하고(오히려 한국이 더 더운듯) 
탁 트인 시야가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죄책감과 침울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기는 어려웠지만 
미안한 마음에 언니와 이모의 빅스비이자 비서를 자청하며 더 열심히 움직이고
감정을 잘 다스리려 노력하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숙소는 리조트가 아닌 레지던스였고 일주일이상 숙박을 하지 않으면
룸 청소나 타월 교체를 해주지 않는 곳도 많다는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체크한 것은 수건의 갯수였는데 
수건은 인원수에 맞게 페이스타올 3개, 바디타올 3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보라카이에 가 있는 기간은 태풍이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시기 
언제 맑았냐는 듯 폭우가 쏟아지고 우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는게 일상이였고 
해변에서 사진을 조금만 찍어도 온 몸에 소금기+모래가 범벅이 되어서 
하루에도 2~3번씩 씻지 않고는 도무지 버틸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건의 갯수가 부족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조용히 내몫의 수건을 양보하고 언니와 이모가 쓴 수건을 말려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말리려고 널어놓은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었던걸까.. 
이모가 씻고 나와서 [누가 수건 쓰고 바닥에 이렇게 해놨어?] 라고 궁시렁거린다. 

새 수건은 다 양보하고 젖은 수건을 널어놨다 다시쓰고 다시쓰고 하고있는데 
알아주길 바란건 전혀 아니였지만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중에 수건을 더 줬기 때문에 
내 배려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도 했다. 

사실 같이 방을 쓰면서 굳이 티내거나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 맞지 않거나 불편한 부분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가령 이모랑 같이 침대를 쓰는데 이모가 외출준비를 할 때면 항상 
가방에 있는 옷과 짐을 다 꺼내서 침대에 늘어놓고 있어서 
앉을데가 없어서 계속 바닥에 앉아있게 된다거나 

전신거울 앞에 한가운데에 서서 자리를 차지하고 혼자 거울을 사용한다던가 
비, 바닷물, 모래가 범벅인 바닥을 그대로 밟은 발로 아무렇지 않게 침대위로 올라온다던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불편함들이 계속 쌓여갔다. 

사실 나도 언니랑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때는 그다지 좋은 동행인이 아니였는데 
아니 솔직히 최악의 동행인이였는데  이모는 그래도 그정도면 양호한 편일까 싶기도 하다. 

고의는 없지만 무심하고 둔한 이모의 모습에서 
과거의 둔하고 예민한 동행인이였던 내 모습을 거울삼아 바라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모래를 버리는 헌옷으로 쓸어서 한쪽으로 치우고 
내 침대에 이모가 떨어트린 모래를 털고 
내 자리에 펴놓은 이모의 옷을 한쪽으로 개서 놔둔다. 

여행을 하면 사람이 성장한다는데 
나를 이만큼 키운건 오롯이 언니의 인내와 배려였던 것 같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굉장히 친절했고 깨끗했고 섬세하고 아주 좋았지만
아마도 다시 보라카이에 가게 된다면 아마도 난 이 숙소를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숙소는 너무 완벽했는데, 다시 가면 온전히 즐겁게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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