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변수가 생기고, 일정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지만 이번 여행은 유독 그랬던 것 같다.
대단했던 해변의 요가클래스를 마친 세사람은 모두 배가 고팠지만
ATV를 예약해두었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1시간정도였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 생각에 들뜬 이모와
시간이 부족해서 멘탈이 터져버린 나 사이에서 고민하던 언니는
숙소에 오는 길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식당을 봤다고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 지체하면 진짜 굶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대안은 꽤 훌륭 했다.
식당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한국인은 없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식당보다는 로컬맛집이 더 끌리는 언니와 나는 설렜고
이모는 약간 실망한듯 했지만 [그래 저녁에 맛있는거 먹으면 되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 했다.
언니는 이모에게 [여기 별 3개짜리 식당이였네~ 맛집이라고 3년연속 상받았대~] 라고 얘기했고
그제야 이모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아왔다.
땡볕의 요가를 마친 우리는 매우 목이 마른 상태였고
음료를 먼저 주문하는데 언니가 서버에게 말을 건다
[새콤한 음료를 추천해줘]
서버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언니는 다시 한번
[나는 단게 정말 싫어. 이중에 어떤게 신 메뉴야?] 하고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망고주스를 권했다.
[노노 망고는 달잖아. 나는 단걸 안 좋아해ㅎㅎ]
그러자 서버는 다시 또 고민하다가 파인애플 주스를 권했고
[파인애플도 달아. 나는 그냥 새콤하고 시원한 것을 마시고싶어.] 라고 말하자
서버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깔라만시 주스'를 권했다.
그렇게 언니는 깔라만시 주스, 나는 파인애플 주스를 골랐고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고민하는 이모에게 언니는 음료를 나눠먹고 물을 먹는게 어떠냐고 권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였다.
서버인줄 알았던 그녀는 사실 바텐더 겸 바리스타 겸 서버였나보다.
한국에서야 익숙한 풍경이라지만 여긴 필리핀인데?
그녀의 멀티 능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면서 식사 메뉴를 고민했다.
이번에도 언니의 결정이 제일 빠르다
언니는 '새우 샐러드'
이모는 한참 고민한 끝에 '새우 팟타이'를 골랐고
나는 '에그 플레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우리는 여행 전부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못 먹는것에 대해 확인했었는데
이모는 '향이 강한 음식'과 '태국음식' '중국음식'같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못먹는다고 했고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서 한동안 고생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나는 원래 팟타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오믈렛이라면 평범하고 익숙한 메뉴라 실패할 확률이 낮으니
이모가 못 먹으면 바꿔줘야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가장 무난한 메뉴를 골랐다.
저기 안쪽이 음식을 만드는 주방인듯 한데
오픈형인척 하는 주방인데 테이블에서 주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벽에 붙어있는 음식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제일 맛있는건 사실 스팸에그라이스가 아닐까~? 하고 낄낄거리는 사이 음료가 나왔다.
언니의 깔라만시 주스
단걸 안 좋아한다는 그녀를 위해 특별이 제작된 초록초록한 주스는
위액 맛 이였다.
계속 먹으면 위청소가 될 것 같은 맛
진짜 시럽이나 설탕같은건 1mg도 함유되지 않은 순수 100% 깔라만시 원액이였다.
나와 이모는 이건 못먹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했고
신게 좋다던 언니도 약간 침울한 얼굴로 [나는.... 새콤달콤한 라임주스같은게... 먹고싶었던건데...] 라며 속상해했다.
그래도 파인애플 주스는 괜찮겠지.
파인애플은 원래 달고 시원하고 맛있는거니까 라고 생각하며 한모금
오. 내가 살면서 먹어본 파인애플 주스 중에 가장 시다.
재작년쯤이였나. 디톡스에 좋다고 방송에 타서 유명했던
파인애플식초를 식초 8, 물1, 얼음1 비율로 갈면 이 맛이 나올거라고 확신한다.
두개의 음료를 나란히 맛본 우리는 잠시 충격에 언어 기능을 상실했고
언니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신게 좋다고 얘기해서 둘다 시게 만들었나봐...]
아무리 그렇다지만 셔도 너무 시다..ㅠ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신맛의 레벨이 1~10중에 한 6정도라면
이 주스들은... 깔라만시 9, 파인애플 7정도 인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메뉴가 남았다는건 불행인가 다행인가
언니의 '새우 샐러드'
샐러드는 실패하기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걸 해낸다.
여긴 섬이라 그런지 신선한 야채를 구하기가 어려운 걸까
한참 다이어트 하겠다고 샐러드야채를 사두었다가 한 2일쯤 안먹고 냉장고에 묵혀두면
야채가 저런 모양이 된다. 시들한것도 아니고 싱싱한것도 아닌 딱 그 중간의 상태.
못먹을 맛은 아니지만..
굳이 돈을 내고 먹을 맛도 아닌 그런 맛.
이모의 '새우 팟타이'
팟타이에 빵이라.. 특이한 조합이다.
한입 먹은 이모는 작게 [고수....ㅠㅠ]라고 말했다.
새우 팟타이는 면이 꽤 두꺼웠지만 간은 잘 배어 있었다(짰다)
마치 한국에서 유행하는 넓적당면이나 분모자가 연상되는 두께였는데
두꺼운 팟타이는 낯설었지만 못먹을 맛은 아니였다.
이모는 [새우...를 먹으려고 시켰는데 새우..는 어디간거지?]라고 궁시렁거렸다.
언니는 조용히 샐러드에 있는 새우를 이모에게 주었다.
사실 언니의 샐러드에 있는 새우도 3개뿐인데
나눠주고 나면 언니의 새우샐러드는 그냥 샐러드가 되겠지.
가장 충격적이였던 나의 '에그 플레이트 오믈렛'
아니 정확히는 '에그플랜트 오믈렛'
오믈렛을 시켰는데 가지가 나와서 엄청나게 당황스러웠다.
메뉴판을 다시 확인해보니 에그 플레이트가 아니라 에그플랜트였다.
급한 마음에 영어를 잘못 읽은 내 잘못이지 뭐.
가지는 사실 굽거나 튀기면 굉장히 맛있는 메뉴인데
이집은 전 처럼 지지는 방식의 요리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요리하면 가지는 굉장히 흐물흐물하고 눅눅해지는데
짜고, 흐물거리고, 눅눅한맛이였다.
가지를 싫어하지 않고, 흐물거리는 식감을 잘 먹는 편이라
못먹을 맛은 아니였지만 뭐랄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이런 조리법을 택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이집은 대체 어떻게 3년 연속으로 맛집이라는 별을 달았을까?
1780페소면.. 한화로 4만원이 넘는다.
게리스그릴에서 오징어구이를 2개나 먹고도 돈이 남고
아이러브 비비큐에서 커다란 립과 튀김, 꼬치구이까지 먹을 수 있는 금액인데ㅜㅜ
확실한건 이 식당은 로컬맛집은 아니였다.
우리처럼 숙소 근처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려는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 곳이였나보다.
해외여행에서의 식사는 한끼한끼가 매우 중요한데 이번 끼니는 완전히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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