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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폭우가 내려도 멈추지 않는 ATV_Zetro Buggy&ATV Adventure

이번 보라카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을 두개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ATV와 체험다이빙을 뽑을 것 같다. 

티니안에서 ATV를 타고 숲속을 누비던 그 경험이 
아직까지도 매우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보라카이의 ATV투어를 예약할때 ATV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리는 사진을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보라카이의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기대에 들떠서 
점심을 포기하더라도 "ATV는 꼭 해야해!" 가 머릿속에 있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도착한 ATV 센터는 사람으로 복작복작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ATV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려면, ATV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출구로 나가는 ATV가 한대도 없었다. 

지도에서 바다와 ATV센터의 거리를 계산해보면서 
다른 출구가 있는걸까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코스가 그려진 지도를 발견했다.

아.. 트랙을 도는거였구나. 
해안도로를 달리는 사진은 코로나 이전에 운영하던 거였다보다. 

조금은 시무룩한 상태로 아쉬워하면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이판 여행에서 스콜을 경험한 적이 있던 나와 언니는 
[괜찮아 금방 그칠거야] 라고 말하면서도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있었고
그 사이 이모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스콜이 아니라 태풍이여서 비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잠시 뒤에 직원이 와서 
비가 많이 내리는데 이대로 진행할지, 
아니면 예약을 다른 날짜로 변경할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이미 일정이 모두 정해져서 다른 날짜로 예약을 옮길 수 없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냥 비를 맞더라도 ATV를 타기로 했다. 

탑승을 기다리면서 빗방울이 조금이라도 약해지길 기도했지만
날씨의 신은 우리 편이 아니였다.

ATV를 타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여행중에 동행인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표정이 굳어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같이 기분이 다운되니까 
티를 내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눈가가 떨리고 얼굴이 찡그려진다. 

다행이라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눈을 뜨기가 힘든 상황이라 
내가 찡그리는게 비때문인지 두통때문인지 동행인들은 알기가 어렵다는 것 정도일까

일행 중 유일하게 무면허인 언니는 
[내가 맨앞에 가면 방해가 될테니까 맨 뒤에 타는게 낫지않을까?] 라고 했는데 
빗길이라 안전을 위해 이모 - 언니 - 나 순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사진 출처 : 구글

트랙은 온통 진흙과 흙탕물 투성이였고 
달릴때마다 내 ATV는 점점 황토색으로 변해갔다. 
한 두바퀴쯤 돌았을까 앞에서 갑자기 언니와 이모가 자리를 바꿔서 
언니 - 이모 - 나 순으로 순서가 바뀌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언니가 운전하는 ATV가 속도가 너무 빨라서 뒤에서 이모를 들이받는 접촉사고가 있었고,
뒤에서 너무 빨리 따라오는게 불안했던 이모가 자리를 바꿔준거였다. 

순서를 바꾼 3대의 ATV는 계속 트랙을 돌고 또 도는데 
트랙에 갑자기 버기카 한대가 추가되었다. 

버기카의 운전자는 외국여성이였는데, 
그녀는 커브마다 속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리막에서도 최저 속도를 유지하는
안전운전의 표본 같은 느낌이였고 점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Go faster! Go faster!] 
언니는 뒤에서 더 빨리를 외치며 그녀를 독려했고 
그녀는 웃으며 커브 한쪽에 버기카를 세우더니 먼저 가라고 차례를 양보했다. 

느듯한 외국인을 제친 세 여자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ATV가 흔들리고 덜컹거릴때마다 더 심해지는 두통과 눈에 들어간 흙탕물에 괴로워하다보니
어느새 언니는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고 이모는 지친건지 영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맨 앞에 가면 방해되지 않을까를 걱정했던 사람은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몇바퀴 더 달렸다면 언니한테 따라잡혔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녀는 내 뒤에서 Go faster를 외쳤겠지ㅋㅋ 
아마도 이번 ATV투어는 언니의 숨은 질주본능을 깨운 것 같다. 

레이싱이 끝난 뒤 우리는 흙탕물 범벅이 된 서로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수돗가에서 흙탕물을 씻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숲속이 아닌 트랙이라서 조금 서운했는데 너무잼있었다고 재잘거리면서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고, 세사람의 표정은 모두 맑음이였다. 

다음번에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아마 또 우리는 그 나라의 ATV 투어를 체험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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