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게 뭐냐고 묻는다면
누군가의 고집을 꺾는 일이였다고 대답할것 같다.
내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시골에서 혼자 하고싶은대로 편안하게 사시면서
위생관념도, 외모도 그 어떤것 하나도 평범하질 않아서
그와 여행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하는 숙제는
1. 아버지의 목욕
2. 이발과 면도
3. 옷 갈아입히기
----
눈이 보이질 않아서
집의 수돗물이 지하수라서
따뜻한 물이 나오질 않아서
보일러를 키면 기름값이 많이 나와서
여러가지 핑계와 이유로 씻기 힘들어하던 당신은
전기면도기로 내키면 한번씩 하던 면도도 하질 않고
머리도 수염도 그대로 길러서 머리는 상투를 틀고,
수염은 긴것이 더 멋있는 거라며
점점 남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고집했다.
그에게 전화로 출국전에 이발과 면도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하자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당신은 냄새나고, 지저분했다.
작년엔가, 병원 검사를 위해 올라온 당신을
수원역에 마중하러 갔다가
역사에 아무렇게나 앉아있는 노숙인을 봤는데
그 노숙인과 내 아버지의 행색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당신만 태평했었다.
[아버지 여권사진이랑 실물이 다르면 해외에선 입국을 거부할수도 있어요.
입국을 거부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출국을 거부하면 문제가 심각해져요]
[그럼 여권사진을 다시 찍으면 되지?]
[여권사진은 귀, 이마가 보여야하고, 수염은 없어야해요]
[....내일 내가 시청에 전화해서 물어보마.]
전화로 그에게 이발과 면도를 해야한다는 것을 설득하다가
끝내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버지 지금 행색이 노숙자와 다를게 없다고요.
그 상태로 출국했다가 노숙인으로 오해받으면 잡혀갈수도있어요.]
한참을 말이 없다가 전화기너머로 시무륵하게
[씻는것이야 씻으면되지이-] 하고 나를 달래는데
정말이지 이 모든게 지긋지긋하다.
조금만 평범하면 안되는걸까.
최소한 다른집은 가족여행을 할때
내 부모가 안씻고, 행색이 지저분한 것을 걱정하진 않을텐데
뇌경색으로 두번이나 쓰러진 당신과의 해외여행에서
당신의 건강이나, 혹시 모를 위험이나 거동의 불편함 따위가 아니라
가장 먼저 당신을 씻기고 입히고 이발을 하는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
출발 전날, 그가 성남에 도착했다.
언덕 위, 2층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죽어도 못자겠다며
좁아터진 집에서는 답답해서 못잔다며
그는 언니가 없는 언니집으로 향했다.
내집은 방2개 거실1개. 그냥 평범한 주택이다.
뇌경색으로 다리가 불편한 당신에게 계단은 힘들어서겠지.
이해해보려 노력하면서 급하게 언니네집으로 향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몸이 불편한 그를 씻기고 집에 돌아왔는데
씻기면서 때나 물이 튀었던 모든 부위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와 있었고 약을 먹어도 가라앉질 않았다.
----
다음날 아침 일찍 그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어떻게 잘라줄까냐는 이발사의 질문에
아버지가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빠르고 단호하게
[최대한 짧고 단정하게요!]라고 외쳤더니
자기 의견은 묻지도 않는다고 아빠가 궁시렁거렸는데
이발사분이 센스있게 웃으며 [요즘은 따님이 하자는대로 해야되요]
이발과 면도가 끝나고나니 이발사분이
[아니 이렇게 잘생기셨는데 왜...] 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도데체 왜 그런 몰골을 하고 사냐는 얘기를
차마 끝까지 하지 못하고 말을 삼킨 것 같은데
맞아요 아저씨.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도데체 왜 그러고 사시는지 딸인 저도 이해가 안가는데
이발사 아저씨는 당연히 더 이해가 안가시겠죠.
당신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렇게 살아도 같이살자는 여자 많아요-]라는데
그런 행색의 당신에게 같이 살자는 그 여자가
하반신마비로 혼자 거동이 불가능한 장애인이며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인지 뻔히 아는 나로선
그저 남들앞에서 부리는 저 허세가 참 하찮고 답답하다.
여행은 이제 시작인데
당신에 대한 내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다.
'차차의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핑에 미친 그녀 (7) | 2024.11.13 |
---|---|
식욕부진을 한방에 해결한 태국요리 맛집. LANBAN (7) | 2024.11.10 |
보홀 손빨래방 (4) | 2024.10.27 |
작은 배와 짧은 노 (4) | 2024.10.06 |
해봤지만 또 떠난다. (6) | 2024.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