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족여행을 해보자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베트남 14박 15일은
아버지의 이른 귀가로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었다.
지난 여행에서 배운거라면
당신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는것일까
두번다시 당신과 여행을, 그리고 해외를 가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앞에 놓여진 수많은 상황 앞에서 우린 또 다시 그와의 여행을 선택했다.
두번의 뇌경색으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당신과의 시간을
최대한 좋은 곳에서 서로 싸우거나 감정상하지 않고 좋게 보내자는 다짐으로
떠나기 전부터 마음을 최대한 단단히 먹었지만 역시 쉽지가 않다.
우리가 출국하는날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였고
기상 상황으로 인해 비행기가 2시간가량 연착이 되었다.
우리의 옆자리에는 30대 중반-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앉아있었는데
그 여자는 출발전 등받이 올려달라, 의자 테이블 내리지 말아달라 등
안전을 위해 하는 승무원의 지시를 승무원이 볼때만 듣는 척 하다가
승무원이 지나가면 1초도 안되서 바로 다시 의자를 젖히고
테이블을 내려서 노트북을 해대더니
그 여자분은 비행기 지연출발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승무원에게 물을 요구했고,
승무원이 물을 판매중이고 무료식음료는 없다고 대답하자
[여기 지금 어르신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한시간이 넘도록 밀 서비스도 없이 버티라는거예요?] 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승무원이 그럼 물만 필요하신거만 한잔만 그냥 가져다드리겠다고 얘기하고서야
그녀의 클레임이 멈추었다.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그럴리가 없지.
다음 타자는 드릉드릉하게 화낼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아버지였다.
[아가씨. 생각 잘 해야해. 오늘 출발을 못할거 같으면 사람들을 내려줘야지
이렇게 기내에서 무한정 기다리라고 하면, 이건 불법 감금이야]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의 클레임도 눈살이 찌푸려졌건만
이런 사람이 내 부모라는게 부끄러웠고, 모르는 사람인척 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막는것도
당신을 진정시키고 달래는것도 내 몫이였다.
힘들게 겨우 도착한 공항에서도 당신은 교통약자 배려를 받으며
편안하게 입국심사를 마쳤고 그게 끝인줄 알았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흡연.
입국수속을 마치자마자 당신이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여기 담배 피워도 되냐?]
[담배 어디서 피는지 물어봐라]
[아버지 여기는 안되요. 공항은 전 구역 다 금연이예요]
그는 내 말을 듣고도 공항에 있는 가드에게 가서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다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노 였다.
언니가 사전에 알아두었다는 툭툭기사와 연락을 해서 픽업을 기다리는데
30분뒤면 온다던 툭툭기사가 오질 않는다.
[오고있는거냐? 저거 아니냐?]
[30분이면 온다더니 도데체 언제 온다냐]
[오긴 오는거냐? 뭐가 잘못된건 아닌지 알아봐라]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부터 그의 독촉은 정말 대단했는데
공항 앞에 서서 기다리는게 힘들어서 그런걸까 싶어
가져온 요가매트를 깔고 앉으시라고 하면서
필리핀은 원래 사람들이 많이 느듯한 성격이라고
작년에 간 보라카이에서 헤어드라이기를 요청했지만 결국 받지 못했고
헤어드라이기를 가져다주겠다던 주인은 해변에 있는 바에서 놀고있었다는 얘기를 들려드렸다.
그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은 잠깐 흥미로워 했지만
베트남에서 차에서 잘 수 없다고 짜증내던 금쪽이는
바닥에 깔린 요가매트 위에는 앉을 수 없는 듯 했고
이내 다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여행 시작 전부터 정말이지 힘들고 괴롭다
차라리 아무 툭툭이나 타고 가버릴까 싶다가도
공항에서 잡아타는 택시나 툭툭은 비싸기로 악명높아서 그럴수도 없다.
무슨 정신으로 숙소에 왔는지 모르겠다.
숙소에서 기다리던 언니가 반갑고
깨끗하고 하얀 침구가 반가웠지만 나는 쉬어야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언니와 나는 일정때문에 다음날 6시에 일어나야 해서 4시간도 못자는 상황
빠르게 짐을 풀고 이제 좀 자보려는데
당신의 체력은 아직 끝나질 않았나보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기분이 좀 풀렸는지
다같이 맥주를 한잔 하자며 나가잰다.
적당히 좀 하고 자자는 얘기가 입안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무말 없이 참는것 뿐.
결국 밖으로 나와 숙소 이곳저곳을 여유있게 둘러보고
전용 비치에 있는 소라게도 만져보고
바닷물에 들어가서 발을 담그면서 온갖 여유를 다 부리는 그
느듯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는 건 좋지만
전날 새벽 5시부터 지금까지 잠 한숨 못자고 시달린 내 입장에선
동생이였으면 진짜 한대 패버리고 싶을 만큼 분노가 차올랐다.
지금은 새벽 2시
이제 여행 시작인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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