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작아서 균형을 잡을 수 없어서 실패한 첫번째 카약타기가 어찌저찌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가 있을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빠르게 먼저 씻고 나와서
그가 씻고 나오면 함께 먹을 컵라면을 끓이고 준비하는 동안
그는 느듯하고 여유롭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더니
[물이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물이 좋다는 뜻인가? 하고 잠깐 의아해했지만 그러기엔 짜증섞인 말투다.
물이 너무 강해서 비누의 거품이 나질 않는다는 얘기였는데
비누는 또 왜 이렇게 작냐, 물이 너무 못쓰겠다.
여태 이런 물로 씻었는지 몰랐다.
물이 이렇게 나쁜지 몰랐다.
참고로 보홀에 온지 이틀째였고, 그는 이틀만에 아주 잠깐 씻으면서도
세상에 없을 나쁜 물, 거품도 안나는 못쓸 비누라며
모든 것들에 불만을 토해냈다.
언니가 [아버지 저희 여기서 3일 묵잖아요. 큰 비누를 주면 저희가 가고 나서 그 비누는 버려질텐데
환경도 생각해야죠. 3일동안 쓰고도 남을 양의 비누잖아요] 라고 점잖게 달랬지만
그의 투덜거림은 끝날줄을 몰랐다.
이내 그는 물이 아주 못쓰겠으니 컵라면은 먹지말라고 하더니
바로 이어서 [욕실에 빨래 물 뭍혀놨다. 빨아 널어라] 라고 말했다
욕실에 들어가보니 카약을 탈때 입었던 모든 옷, 속옷, 양말까지
모두 축축하게 젖은채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옷이 젖었으니 빨아서 널어야 말리고 돌아갈때 다시 입을것 아니냐는 그의 논리는
언뜻 타당하다고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내일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숙소로 이동해야하고
내일은 하루종일 비가 올 예정이다.
카약을 타기 전에 미리 반바지와 수영복으로 갈아입으시라고
나도, 언니도, 이모도 여러번 말했는데 [반바지는 모기물려서 싫어]라며
죽어도 긴바지만 고집하더니 안그래도 젖은 정장바지와 정장셔츠에
비누칠을 해야 빨래를 할 수 있을거 아니냐며
욕실에 있는 어메니티 샴푸까지 옷에 다 뿌려놔서
손빨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놓고는 태연하게 침대에 앉아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언니는 차분히 아버지를 달래며
지금 손빨래를 해도, 내일 아침에 체크아웃을 해야하고
비도와서 옷이 마르지 않을거라고 설명하면서
지금 빨래를 하는게 쓸데없이 체력만 빼는 행위임을 설명했지만
사고 친 당사자는 태평하게 아무 생각이 없다.
마르지 않을 빨래로 그렇게 한참을 스트레스 받으며
보홀에 있는 빨래방과, 리조트의 세탁서비스를 고민하는 사이
아버지는 다리미만 있어도 옷을 말릴 수 있을텐데.. 라고 말했다
리조트에서 다리미와 다림판을 빌리는건 가능하지만,
그걸 누가 언제 다리고있냐고 했더니
[내가 한복집 아들인디~ 다림질 그까튼거 못하것냐] 라고 자신을 보인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고,
본인이 친 사고 본인이 수습하시라는 마음으로
다리미와 다림판을 빌려서 갖다줬더니
수건을 위아래로 깔고 젖은 옷을 열심히 다리길래
[아버지 수건 타면 안되요. 그럼 돈 물어줘야해요] 라고 말했더니
[수건은 타도~ 팬티는 절대 안타지이~]
[아니. 팬티는 타도 되는데 수건은 타면 안되요]
[수건은 타도 팬티는 절대 안탄다니까아~!!]
.......
더이상 말도 섞고싶지 않아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렇게 1~2시간쯤 잤을까
쾅 하고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아마도 다림질을 하면서 열심히 옷을 말리다 지친 그가 담배를 피우러 나간 것 같았다.
늦은시간이라 걱정이 잠깐 앞섰지만
따라나갈 기운도 없다.
보홀에서의 손빨래는 다음날도 이어졌다.
미티리조트에서도 노가 짧아서 카약타기에 실패했고
바닷물에 젖은 그는 또 목욕을 했다.
그는 건식욕실의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어놓고
또 바닥에 입은 옷, 속옷, 양말까지 던져놓고 물에 흠뻑 적셔놓더니
빨래감에 샴푸를 잔뜩 뿌려놓았다.
욕실 바닥의 물을 수건으로 다 닦아내는것도
그가 벗어던져놓은 옷을 빨아서 너는것도 모두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도데체 무엇을 위해 저사람과 함께 여행을 왔을까
아침에 눈을뜨고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당신이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불편할까봐 당신을 챙기고
식사부터 잠잘 때 온도까지 모든걸 당신을 위해 맞췄는데
백번을 양보해서 몸이 불편한 당신을 위해
옷이나 수영복을 세탁하는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난닝구에 팬티와 양말까지 매번 빨아널게 하는건 너무하지 않나
화를 참으며 묵묵히 손 빨래를 하고 있는 나에게
언니는 사실은 첫날밤에도 아빠가 신었던 양말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집어던져놓고 [빨아널어라] 라고 했는데
나까지 스트레스 받을까봐 말없이 두번이나
내색없이 손빨래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줫다.
몸이 불편한 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온 자식은
원래 이렇게 시녀같은 대접을 받는걸까
생각과 분노가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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