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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작은 배와 짧은 노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는 함께 하는 여행에서 항상 카약을 타고 싶어 했다 

[배 한척이랑 노만 있으면 내가 어디든 가지] 

몇년 전 같이갔던 베트남의 부온마투옷에서도 숙소에서 카약을 빌렸었는데 
숙소 근처에서만 타라던 리조트 직원의 말은 싹 무시하고 
끝도없이 노를 저어서 가면서 혼자 물소도 보고 
물위에 있는 연꽃도 구경하고 
저기 멀리 있는 섬에도 가볼까나~ 하면서
같이 탄 내 속을 새까맣게 태워버린 전과가 있는 그는 
이번에도 카약을 원했다. 

이번엔 꽤나 노력을 하시는 듯 했지만 
100점 만점에 97점짜리 숙소에 데려다놓으면 3점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며 뚱해있던 그가
뭘 얘기해도 시큰둥해하고, 이 더운 날씨에 반바지 한번을 안입겠다고 우기던 그가 
유일하게 하고싶다고 한게 카약이었다. 

원래부터 [하고싶은게 있으면 해야지]라고 말하던 언니는 
빠르게 숙소 직원을 불러와 카약을 빌려주었고 
숙소 직원은 같이 탈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가 선장인 배에 탈 생각이 없었다. 

물속에 들어가야하니 반바지로 갈아입으시라고 얘기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긴 정장바지를 입고 카약을 타러 들어갔고 
카약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결국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배와 노만 있으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신하던 그는 
배가 너무 작아서 안된다고 균형을 잡을수가 없다고 하면서
괜히 바지만 버렸다며 짜증을 부렸지만 내심 속상해보였다.

미티리조트로 숙소를 옮기고나서 
리조트에 있는 투명카약을 발견한 언니가 다시 카약을 빌려주자
조금은 들뜨고, 조금은 걱정되는 모습으로 그는 다시 배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조금 더 폭이 넓은 카약이라 다행이 안정감있게 배에 오를 수 있었고 
그토록 원하던 카약을 탄 그의 첫 마디는 
[노가 짧다] 였다. 

배 위에서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노가 물 속까지 닿아야하는데 
어깨를 쓰지 않고는 노가 짧아서 노를 저을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이건 노가 너무 짧아. 배가 앞으로 나아갈수가 없어.
좋은 노가 있는데 일부러 짧은걸 준거야. 순 사기꾼들이여]

하도 신경질을 부려대면서 노를 다른걸로 바꿔달라고 투덜거려서 
[아버지.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대요] 라고 얘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노가 짧단마다!! 이거보다 두배는 길어야해!!] 였다. 

두번의 뇌경색으로 이미 몸의 신경이 많이 마비되서
팔도, 다리도, 몸의 균형도 예전같지 않은 그였지만 

첫번째 카약은 배가 작아서
두번째 카약은 노가 짧아서
라고 도구를 탓하면서 화를 내는 그를 보면서 

많은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어떤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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