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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Merkat Tapas Restaurant, Danang

짜증나는 비 오는 날, 제법 낭만적인 저녁식사

베트남 일정의 팔할은 태풍이였다.
내가 베트남에 묵는 동안 뉴스에 '홍수 속 서핑을 즐기는 베트남인'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비를 맞으면서 돌아다니고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와 눅눅하고 무거운 가방이 익숙해질수록 원인모를 우울함이 커져갔다.

사실 원인은 명확했지만, 모른척 넘어가는게 서로를 위해 좋을 일이였을터.

[비온다고 호텔에만 있기싫어!!!!]를 외치는 언니를 위해,
한 없이 우울하게만 있을 수는 없는 나를 위해 맛있고 특별한 저녁을 먹고싶었다. 

트립어드바이저를 뒤지고, 구글지도를 뒤져가며 찾아낸 곳은 다낭 시내의 스페인 요리점 'Merkat'

[엄청나게 색다르고 맛있는 스페인 요리집입니다.]
[트립어드바이저 1위 까지는 아니지않나? 잘 모르겠어요.] 라는 아주 극명한 후기로 갈리는 집이라 고민을 했지만 
인생 첫 하몽과 샹그리아라면 어떻게든 즐거운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거라고 믿기로 했다. 

깨끗하고 오픈된 주방, 최소한 위생 걱정은 없겠어

고르고 골라서 항상 평이 좋은 식당에서만 식사를 했음에도, 고르고 골라서 좋은 숙소에만 묵었음에도 
베드버그와, 바퀴벌레, 쥐 등을 목격하며 위생에 대한 불편함을 항상 동반했었는데 아주 맘에 든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동안의 모든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사라져버렸다. 

아 여기 마음에 들어.

Of course! Why not be happy?

입구에 들어서자 여주인이 아주 환한 미소로 우릴 맞이했다. 
입꼬리가 거의 귀까지 올라간 것 같은데...??

상냥하고 러블리한 여주인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상냥하게 원하는 곳 어디에 앉아도 괜찮고,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괜찮고,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주문해도 괜찮다는 식으로(마지막건 못알아들었음) 얘기했다.

언니는 그녀에게 씨익 웃으며 [Are you happy???]라고 물었고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Of course! Why not be happy?]라고 되물었다. 

아.. 나는 오늘 자기 일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만났구나. 
내 직업도 서비스업과 무관하지 않기에 서비스마인드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친절하려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나는 한번이라도 순수하게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준 적이 있었는가... 
8년의 경력이 쌓인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게 또 여행이 주는 교훈이겠지.. 

이제 인생 첫 하몽을 만날 시간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메뉴이고, 벽에 걸려있는 저 커다란 것이 하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 어쩌면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별로일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훈제, 육포, 고기, 햄은 사랑입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맛. 

엄청나게 비싸고 짭쪼름한 육포맛인데 조금 더 고급스럽고 살짝 가벼운 듯 무거운 맛.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저런 느낌이다. 

[주문한 모든 메뉴가 나와서 완성샷을 찍기 전까지 티나게 먹기 없기!]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나와 그녀의 암묵적인 룰이다.
근데 오늘따라 이 룰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 

언니의 잔(오른쪽)과 내 잔(왼쪽)의 양 차이만 봐도 얼마나 야금야금 먹어댔는지 알 수 있다. 

비 오는 날 베트남에서, 가장 베트남스럽지 않은 식당에서 
아주 완벽한 저녁식사와 아주 완벽하게 멋진 사람을 만났다. 

하몽 한입, 샹그리아 한모금. 
아 오늘 저녁의 주인공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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