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시장을 좋아한다.
아마 어릴때는 전통시장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는 명절에만 시장에 데려가셨는데 가족의 장보기는 항상 정신없이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누가 뒤에서 쫒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다 짐을 나눠들어야 했다.
크고 무거운 사과박스와 배 박스, 항상 물이 고여있는 생선코너에서 항상 바지 끝자락이 젖는 것으로 마무리.
TV에서 시장을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할 때 마다 세상 코웃음을 치며 진절머리를 냈던 내가 전통시장을 좋아하게 된건
성인이 되고나서 언니랑 같이 시장에 다니기 시작한 즈음 인 것 같다.
언니와 아버지의 장보기 스타일은 닮은 듯 다르다.
둘다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게 닮았고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입장에서 볼때),
큰 손으로 물건을 박스단위로 구매하는 아버지는 군것질 앞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나를 못본척 하셨고,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사고 자주 시장에 가면서 싱싱한 것을 공수해오는 언니는 항상 내가 먹고싶은것을 물었다.
사실 시장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갖췄고, 우린 해외에 가면 당연하다는 듯 로컬시장을 꼭 찾아갔다.
데이 마켓과 나이트 마켓 모두를 돌아보면서 먹고싶은것과 사고싶은것을 저렴한 가격에 잔뜩 사고
가득한 현지인과 외국인들 사이를 걷는 일은 힘들지만 즐겁다.
푸꾸옥의 시장은 섬 답게 해산물과 진주가 유명하다.
언니는 성게를, 나는 진주를, 형부는 수영복을 그렇게 각자 다른 목적으로 들린 야시장은 역시 좋다.
금강산은 언제나 식후경. 변하지 않는 진리
저 방망이같이 생긴 고기핫바?는 엄청나게 맛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웠으니 맛이 없으면 중죄인데 얜 무죄.
바게트 빵 같은거를 같이 주겠다고 했는데 핫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빵과 핫바는 친해지기 힘든 조합이다.
옆에 있는 초록색 꼬치는, 명절에 만드는 깻잎전이랑 비슷한 느낌의 맛이다.
야시장은 해가 지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한다.
어느새 길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삐에로 옷을 입은 남자가 풍선을 나눠준다.
사실 한국이였다면 1등으로 앞에서서 저요저요를 했을텐데.... 이곳은 동남아.
예전에 태국에서 툭툭기사에게 사진을 한장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가 차비보다 더 많은 팁을 강제로 준 뒤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물론 그 사진이 다 흔들려서 한장도 쓸 수 없었다는건 더 슬픈 이야기지만 넘어가자.
그래도 왠지 모를 미련이 남아 삐에로 앞에서 한참을 머뭇머뭇.
사실 바람 빠지고 나면 쓰레기에 불과한데 왜 항상 쓸데없는게 갖고싶을까...
드디어 찾아온 진주 쇼핑타임!!!
사실 이 곳에 오기 전에 존스투어인가 뭐시깽인가 하는 아주 별로인 투어에서 진주생산지를 갔었는데 거기에서 파는 진주의 가격이 한화로 10~100만 단위를 찍는 것을 보고 심각하게 우울했는데..
여기서 파는 진주귀걸이는 한화로 5천원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심각한 가격차이를 봤나!!
색색깔의 진주 귀걸이와 팔찌를 한가득 고르고 결제를 하려는데, 갑자기 상인이 씨익 웃더니 내가 고른 흰 진주귀걸이를 라이터 불로 지졌다. 아니 사겠다고 결정을 했는데 진주를 무슨 미디움 웰던으로 구워주는것도 아니고 왜 내 허락없이 불에 지져버리는건가 싶어서 화가나고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눈치 빠른 언니가 "아~ 이거 플라스틱이 아니라고 보여주는거야?" 라고 물었고
내 표정을 보고 살짝 당황했던 상인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호혼인줄
우여곡절끝에 진주를 사고 나니 시장엔 사람이 더 많아졌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점점 활기를 띈다.
지금도 쓰고있는 아주 귀여운 볼펜 몇자루와 요리도 안하는 주제에 향이 아주 강하고 매운 흑후추를 사고
견과류 극혐을 외치는 주제에 이 나라에서만 판다는 양념땅콩을 샀다.
사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라는 법은 없는거고, 몇천원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기분이 좋아지면 된거아닌가
라고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오늘도 지름신님께 항복했다.
얼추 구경과 장보기를 마치고 나니 슬슬 입이 심심해졌다.
해산물이 유명한 시장 답게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이 있었고,
마음 같아선 저 킹크랩을 해치우고 싶었지만, 모든 해산물은 싯가.
물건을 살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싯가인거같다.
사실 배가 엄청나게 고픈 상태가 아니였기 때문에 맛만 보자는 느낌으로
성게 몇개, 가리비3개, 관자 조금, 이름모를 조개 조금을 주문했고,
조개류는 한꺼번에 구워져서, 성게는 따로 다른 접시에 나왔다.
뭔가 전체적으로 달고 짜서 입에 맞지 않았고, 성게는 상상했던 맛이 아니여서 실망스러웠다.
어느새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야시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야시장은 여전히 부산스럽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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