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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나트랑 아이리조트 온천(I-Resort, Nha Trang)

가장 기대했던곳, 가장 가기 싫었던 곳

나는 항상 해외여행을 가면 온천이나 스파를 일정에 우겨넣는다. 
일본에서 오오에도온센에 갔을 때 사실 찜질방과 다를게 무엇인가? 라는 고민을 했었던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온천에 특별한 추억이 있는것도 아닌데, 꼭 온천이나 스파를 일정에 넣고서야 만족한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의 온천은 조금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저시력자인 아버지를 모시고 떠난 첫 해외여행에서, 가장 좋은것가장 맛있는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며 온갖 삭신이 아플법한 그에게 따뜻한 온천욕을 선물하고 싶었다. 

본인의 사물함 위치를 찾는 것, 입구와 출구를 찾는 것, 옷을 갈아입는 것 등 사실 신경쓰이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한국인이 많이 가는 온천이고,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에 과감히 온천을 선택했건만... 

우리의 일정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트랑에 오기 전 무이네에서 연로한 아버지의 나약함과 알콜의존증을 직면해야했고,
자존심만 남아버린 가장은 여행지에서 혼자 귀국을 선택했다.

눈부시게 맑은 날씨와 눈부시게 좋은 온천

사실 일정대로 아이리조트에 가야하는가를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를 위한 온천에 '그'가 빠졌으니, 과연 즐겁게 이곳을 즐길 수 있을까?

그치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텔에만 쳐박혀서 이 우울함을 온몸으로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했고 억지로라도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따라오는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야했기에 
일정대로 온천행을 결정했는데, 그날따라 하늘이 엄청나게 높고 눈부시다. 

아이리조트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머드온천은 아주 부드럽고 미끌거려서 기분이 좋았고, 
넓고 따뜻한 온천에는 사람이 적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 오길 잘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다 잊어버리고 재밌게 놀다 가자.

항상 구경만, 온천달걀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조금 출출해졌다.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하필 온천달걀이 눈에 들어왔다. 

저 온천달걀이랑 맥주 한잔을 사서 온천욕을 끝낸 아버지에게 또다른 온천의 매력을 보여주려 했었는데....  

다시 헛헛한 생각이 들어서 잠시 계란 앞을 서성거리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일본 온천에서도 온천달걀은 배가 불러서 못먹었는데.. 오늘도 온천달걀은 구경만.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해

아이스크림을 가볍게 먹어치웠고, 다시 놀아볼까.
오늘 이 거지같이 나쁜 기분을 이 온천물에 다 빠트리고 말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언니의 안색이 좋지않다. 

이게 다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밥을 먹고 힘이 나면 신나게 놀 수 있을거라고 얘기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항상 어디에서도 변하지않는 법칙같은게 있는데,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허기가 지고,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힘이난다. 

2명이서 메뉴 3개를 주문했더니 직원이 의아해하며 메뉴를 두번 확인하고 자리를 떠났다. 

2인 3메뉴는 상식이거늘.. 
동남아 사람들이 적게 먹는걸까 우리가 많이 먹는걸까? 

미끄럼틀은 나이제한이 없다.

점심을 야무지게 먹고나서 이제 뭘 하고 놀아야 기분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시야에 들어온건 미끄럼틀.

다소 낮은 물높이에 미끄럼틀 두개가 있었다.

[우리 저거 타자]

싫은건지 좋은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잠깐 지은 언니를 이끌고 무작정 미끄럼틀로 향했고, 
생각보다 내가 잘 놀자, 그녀는 들고있던 DSLR을 사물함에 넣고 오면 놀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내내 표정이 좋지 않던 언니가 아이리조트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했으니, 
그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잽싸게 다녀와야지. 

그렇게 몇번을 미끄럼틀을 타고 신나게 놀다가 주위를 둘러봤는데 애들뿐이다. 
다소 낮은 물높이, 낮은 수온, 어린이들을 품에 안은채 놀아주는 부모들... 
우리가 노는것을 지켜보던 외국인 커플 몇몇만 한두번 타다가 떠났다.

아... 이거 어린이용인가.....????? 

가장 높은곳은 귀빈용

미끄럼틀을 타다가 왠지 머쓱해져서(실컷 놀아서 질려서가 절대아님)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엔 언니가 내 손을 잡고 바위 위에 있는 폭포(?)로 향했다. 

가장 유니크한것, 가장 높은곳을 좋아하는 그녀는 끝도없이 계속 걸어 올라갔고 
아무도 없는 곳에 마침내 도달했는데, 귀빈용이라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서운해하는 언니를 달래서 몇계단 걸어 내려와 폭포위에서 온천을 내려다보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같이 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또 마음이 심란하다. 

[우울하기 없기. 기분 안좋아도 티내기 없기]

함께 여행하면서 언니와 정한 암묵적인 룰이자, 앞으로 남은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룰을 떠올리며 
심란한 마음을 다시 털어버리려 노력했다. 

다시 오고싶지만, 다시 안올 것 같다.

이제 지칠대로 지쳐버린(아니 사실 처음부터 기운이 없었던) 언니를 두고 아쉬움에 한번 더 수영장에 들어가서 
물 위에 잠시 동동 떠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것은 사실 어렵.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렇게 좋은 장소를 이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즐기기도 어렵지 않을까....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정말 최고로 좋았을만한 모든것을 갖춘 곳이라 더욱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이 곳에 사심없이 다시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치만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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