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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케챱을 잘하는 맛집

호이안에 폭우가 내리던 날. 

호이안 올드타운을 보겠다고 비옷에 장우산을 들고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강인지 도로인지 알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올드타운의 풍경을 두눈에 꼭꼭 눌러담고나니 
어느새 신발과 발은 퉁퉁 불어있고, 배에선 천둥이 치고 있었다. 

[우리 뭐라도 먹자]

저녁시간이라 서둘러 먹고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베드버그가 나오고 직원파티로 온 호텔이 베트남식 뽕짝으로 울려퍼지는 그곳에서 룸서비스를 먹기는 죽어도 싫었다. 

[여기 어때? 스파게티에 감자튀김이면 실패할일도 없을거 같다.]

텅텅 빈 좌석이 마음에 걸렸지만, 늦은 시간 때문이려니 하고 자리에 앉았다.

형형색색의 천. 엄청나게 화려한 등받이. 조명과 식물로 둘러싸여 제법 이국적인 느낌. 


분명 이곳은 입구에 Wine Bar Restaurant라고 적혀있었고 메뉴판엔 조그맣게 이탈리아 레스토랄이라고도 기재되어 있었는데 

메뉴판이 베트남어와 중국어로만 써져있다. 

그나마 몇글자씩 보이는 영어가 감지덕지한 상황 

게다가 메뉴의 70%가 베트남 현지식이였고, 와인과 곁들일만한 메뉴는 별로 없었다.

이때 그냥 나왔어야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팠고, 
유동인구가 많은 올드타운이라지만 다른 식당을 찾아다니기엔 시간이 조금 늦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인에게 메뉴의 설명을 요청했는데 그녀는 매우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거 설마 우리꺼는 아니겠지...?

결국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파파고와 구글번역을 최대한 동원해서 바질토마토스파게티와 치킨버거, 감자튀김을 주문하는데 성공했다.

먼저 나온 맥주를 한모금. 
아 역시 맥주는 언제나 옳다. 

잠깐 한숨 돌리는 사이 갑자기 여주인이 베트남 모자를 쓰고 저 반대편 어디론가 사라진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 조리를 하다 재료가 떨어진걸까...? 


다른 종업원도 없는 이 가게에 우리 둘만 멍하니 앉아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무렵.

그녀는 음식을 들고 나타났고. 그 음식 위에는 아까 그녀가 쓰고 나간 베트남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저거 설마 우리꺼는 아니겠지...?]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다. 

우리가 주문한 파스타는 이웃 가게 어딘가에서 그녀의 베트남 모자를 쓰고 우리 눈 앞까지 옮겨져왔다. 

아마도 이 파스타는 최초로 모자를 써본 파스타계의 베스트드레서가 될 것 같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식욕이 생길 리 없지만
배고픔엔 장사가 없기에 최대한 모자가 닿지 않았을 아래쪽의 면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말 안듣게 생긴 파스타의 맛은 역시나였다. 
토마토와 바질과 면이 다 따로노는데 그 와중에 파스타를 볶은 올리브오일의 자기주장이 강하다. 

한마디로 느끼하고 뚝뚝 끊어지는 말 안듣는 파스타. 

일생에 단 한번도 서양요리를 해본적이 없는 65살의 아버지가 파스타를 하더라도 이것보단 맛있을 것 같다. 
아버지에게 올드타운에서 파스타 가게를 하실 생각이 있는지 여쭤봐야겠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파스타를 끼적대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아직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남아있다. 

사진을 찍을 의욕같은건 이미 저 너머로 사라져 있었다.

햄버거는 이상한 향신료의 향이 강했고

감자튀김은 얼마나 오래된 것을 다시 튀긴건지 바삭하다 못해 딱딱하다. 
감자튀김을 케챱에 찍어서 한입. 

아 이집 케챱 잘하네.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케챱이 가장 맛있다. 

만약 이 곳에서 꼭 한가지를 테이크아웃 해야한다고 하면 케챱과 맥주를 선택할 것 같다. 


숙소에 가서 컵라면을 먹어야겠다. 



La Tonnelle (La Veg Restaurant) 

+84 93 542 05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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