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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호이안 농장

계획에 없던 농장투어

투본강(요단강) 선라이즈 투어가 태풍+추운날씨로 완전히 망해버리고, 
사진을 찍어보기도 전에 모두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다시 돌아온 우리는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호이안 농장으로 왔다.

2019/07/10 - [차차의 여행] - 투본강 선라이즈 투어(ThuBồn River Sunrise tour)


사실, 나는 농작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너무 추워서 빨리 차에 타고싶었고 어딘가를 더 구경할 체력같은건 남아있지 않았다. 

막상 도착한 농장은 생각외로 소담하고 예뻤다.

넓은 토양, 곳곳에 스프링쿨러가 박혀있고, 가지런하게 작물을 가꾸고 있는 모습에 잠깐 눈을 뺐겼고 
초록을, 그리고 식물을 좋아하는 언니도 나도 이곳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스프링쿨러로 물벼락을 맞기 전까지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날은 아~~~~~주 추웠고, 내 옷은 여름옷이여서 그냥 서있기만해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데 
스프링쿨러의 가벼운 환영인사에 아주 살짝 옷이 젖었고, 

그때부터 이빨이 딱딱딱거리며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추워서 입이 돌아가는건, 실화가 될 것 같다.


언니.. 입술이 보라색이야...


애석하게도 가이드는 내 추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아마 내가 그렇게까지 추워하는지 몰랐을거라고 예상된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농부에서 친근하게 다가가 말을 걸고 짧은 대화를 했고, 

작물 하나하나를 조금씩 따서 자세히 보여주며 설명을 해줬다. 

이건 로즈마리, 이건 애플민트... 

[괜찮아 만져봐. 냄새 맡아봐]


친절한 가이드는 식물 하나하나를 종류별로 다 따서 보여주고 만져보고 향을 맡게 해줬다. 

이미 구경보단 생존이 우선이였던 내게는 가이드의 친절이 달갑지 않았고, 
이 투어가 빨리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기를 속으로만 열심히 바랬다. 


[너 이게 뭔지 알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동그라미를 가르키며 가이드가 물었다. 


라임? 애호박? 덜익은 귤인가? 
동그란 과일과 채소가 머리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모르겠어 빨리 말해줘]

[이거는 패션후르츠야.]


와 이건 좀 놀랍다. 내가 아는 패션후르츠는 보라색?에 가까운데... 덜익은 패션프루츠는 저런 모양이구나... 

로즈마리, 고수, 레몬그라스 등등등 

여태 지나오며 모든 채소와 작물을 따서 만져보게 해주고 선물해줬던 가이드가
저 덜익고 동그랗고 예쁜 패션후르츠도 따서 주려나? 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사실 저건 좀 갖고싶었다)

손이 안닿는것일까.. 아니면 과일은 따면 안된다는 룰이 있는것일까... 

결국 패션후르츠는 만져볼 수 없었다. 

이제 어느정도 투어가 끝나가는 것 같다. 

드디어 차로 갈 수 있겠구나. 이제 숙소로 가겠구나. 
오늘 하루 중 가장 설레고 기쁜 순간이였는데 직업정신이 투철했던 친절한 가이드에겐 이 코스가 2% 부족했나보다.


갑자기 한쪽에 물이 가득 담긴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사실 물 안쪽이 탁해서 아무것도 안보였고 고여있는 물통이라서 농사할때 쓰는 물인가보다 했다. 

갑자기 가이드가 손에 들고있던 풀을 이 물통에 버렸는데
안에서 금붕어가 나타나더니 풀을 뜯어먹었다. 

[너 금붕어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뭔지알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저건 사실 상추야]


이건 무슨 개풀 아니 금붕어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금붕어한테 상추를 준다는 얘기는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못믿는 눈치이자 포토그래퍼라고 쓰고 가이드의 조수라고 읽는 그가 진짜로 상추를 따와서 금붕어가 먹는걸 보여줬다. 

가이드가 보여주는 모든 풀에 흥미를 보이고, 
그가 주는 풀을 넙죽넙죽 받아서 양손가득 종류별로 풀을 들고있던 언니는 

[이거 사진좀 찍어줘. 이름이랑 기억하고 싶어]

라며 행렬에서 조금 떨어져서 좀비처럼 겨우 따라다니기만 하던 나에게 부탁을 했고, 
사진을 찍어주고는 추위를 나보다 더 많이 타는 언니가 쌩쌩한게 신기해서 그녀를 쳐다봤는데...


진짜 좀비는 여기 있었다. 

[언니... 입술이 보라색이야.]

[아 그래? 어쩐지 춥더라니....]


그녀는 추운것도 잊을만큼 이 투어가 맘에 들었던 것 같고, 
컨디션이 다운되버리면 크게 몸살을 하는 그녀의 체력을 아는 나만 조심스럽게 걱정을 이어갔다.

드디어 숙소다!!! 는 훼이크 


초록과 추위가 가득한 농장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탑승했을 때 
차안에서 챙겨온 담요를 언니와 나눠덮으며, 얼음장같은 손을 서로 꼭 잡고서 

아... 드디어 숙소로 가는구나 싶어 마음을 푹 놓고 쉬고 있을 무렵 

차가 시내 한곳에 정차했고, 숙소 근처가 아니라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우릴 시장으로 안내한다. 

아? ㅇㅅㅇ? 안끝난거였어????? 

시장을 지나가면서도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설명하길 쉬지않던 그는 
시장 안쪽의 로컬푸드를 판매하는 곳으로 우릴 데려갔고, 

이곳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주문했다. 우리 몫까지.

추운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는 언니와 
입맛이라곤 1도 없고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고양이나 쓰다듬고 싶었던 나는 한사코 사양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예의상 사양하는것 처럼 보였나보다. 

사실 베트남에 오기전부터 
바나나튀김이라던가, 분짜라던가 하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음식부터 현지인들의 로컬푸드까지 
이거는 가서 꼭 먹어보고 와야지. 하고 생각하며 현지 음식들을 이잡듯이 뒤졌었지만 

단언컨데 이런 비쥬얼은 어느 사진에서도 본적이 없다. 


말랑말랑한데 좀 잘 풀어지는 떡같은 것에 새우튀김가루를 뿌리고 알 수 없는 소스를 뿌린것 같은 맛.
못먹을 맛은 아니고 맛이 없는것도 아닌데 맛이 있는것도 아닌 그런 맛이다. 

이게 무슨 맛이냐면, 무슨맛인지 잘 모르겠는 맛이다.

그래도 그들에겐 제법 친숙하고 맛있는 메뉴인듯 하고 
대접받은 음식이니 남기면 안된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취향이 아닌 맛이였고 

[나는 못먹겠어 니가 최대한 많이 먹어]

언니는 한술 뜨더니 빠른 GG를 선언했다. 

그렇게 나는 이름도 모르고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맛도 모르겠는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새 아침해가 뜨고, 
시장에서의 해프닝도 지나고 나니 익숙한 구시가지의 노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동안 제법 익숙해졌을 노란 건물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숙소에 도착하면 씻는거고 뭐고 모르겠고 일단 누워야지. 

한숨 더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자고 해야지. 

그렇게 쉴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아.... 나는 이 가이드를 과소평가했다.

그는 호이안에서 내려 커피를 한잔 하자는 얘기를 했고,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려 노력하는 그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구시가지 근처를 걸어서 커피집으로 가는데, 

그는 호이안의 건물이 왜 노란색인지를 설명해주었고 (영어로)

항상 언어의 장벽에 막히는 나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그의 배려가 돋보였지만 
체력이 오링나서 멍때리며 걷던 내 귀에 들린것은 고작 [전쟁][프랑스]였다. 

아마 프랑스가 베트남을 통치하던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는 강가 옆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커피숍인지 알 수 없을만한 곳으로 우릴 인도했고, 

커피를 잘 모르기도 하고, 마시면 배탈이 잘 나는  
가장 어렵다는 메뉴인 [아무거나]를 주문했고 

가이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커피숍 앞에서는 강가를 배경으로 시대극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저기 나오는 배우가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 배우라며, 우리가 운이 좋다고 했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에 얼굴이라도 한번 더 봐볼까 하는 마음으로 괜히 고개를 빼꼼빼꼼 


조연출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다니며 커피숍에 앉은 사람들에게 조용히해주세요~~~ 라고 얘기했고 (느낌으로 알아들었다)
잠시 후 큐사인이 떨어졌는데 두명의 배우가 강가를 걸어가는 신을 촬영했다. 

강가는 구경하는 사람과 촬영스텝 그리고 등에 감정을 최대한 잡는 배우 그리고 눕고싶은 내가 있었다. 


어느새 커피가 나왔고 커피는 아이스다. 

커피는 연유반 커피반. 

오 드디어 명성가득했던 카페쓰어다를 먹어보는건가. 

얼음가득한 커피를 골고루 잘 저어서 한모금 했는데


앗뜨거????????


얼음이 가득한데 왜 뜨겁지.....ㅋㅋㅋㅋㅋㅋ?

다시 열심히 커피를 저어서 한모금 
크... 맛있다.. 이건 진짜다.

오늘의 힘듦을 다 씻어줄만큼 달달하고 맛있는 커피였다. 


사실 태풍은 천재지변이기에, 투본강에서 투어가 그냥 종료되고 숙소로 돌아왔을수도 있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가 여행사에 클레임을 걸진 않았을텐데도 
가죽자켓에 가죽파우치를 든 멋쟁이 가이드 아저씨는 

조기퇴근의 꿈은 모든 직장인의 로망일텐데도

우리의 베트남 여행을, 그리고 이 투어를 망치고 안좋은 기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현지인들만 아는 로컬시장부터 새벽의 소박한 올드타운의 산책까지 그가 생각하는 좋은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는거지만, 그건 직업정신이라기 보다는 배려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 마음과 열의가 감사해서 비록 체력은 없고 추위와 싸우긴 했지만(솔직히 숙소로 가고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이 투어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고, 가장 많은 사진과 이야기를 남겼다. 


숙소에 돌아와서 그대로 스러져 잠들었다는 이야기와 

그가 사준 카페쓰어다가 또 먹고싶어서 이후에도 계속 찾아다녔지만 결국 먹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후문을 뒤로한채 

이만하면 아주 완벽한 투어였다고 생각한다. 

부족한것은 내 체력이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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