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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의 여행

호이안 미선(My Son)투어

고속버스가 너무 싫어.

사실 미선투어는 취소할 뻔 했던 일정이였다. 


전날 빗속을 걸으며 신나게 돌아다닌건 좋았지만, 체력이 빠르게 방전되기도 했고 
데이 패키지로 예약했던 투어인데 유적지라는 것 이외에 다른 사전지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국내의 역사적인 유적지들을 소풍이나 체험학습으로 갈 때 마다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기도 했었고, 대단하다는 국보급 유적들을 보면서도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리라.  

굳이 국내에도 널려있는 그저그런 유적지를 해외까지 와서 투어로 돌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고 
거기에 쉬고싶은 마음이 더해지면서 투어를 취소하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언니는 기왕 왔으니 일정을 다 소화하길 원했고, 한명이라도 가고싶다면 그 일정은 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투어로 가는 버스에 탔다. 


우리를 픽업온 차량은 커다란 고속버스. 

어릴 적 수학여행을 가는 관광버스에 탔을 때 이런 느낌이였던가. 
바글바글, 시끌시끌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한 버스에 모여서 자기 나라의 언어로 아주 시끄럽게 떠드는데 
직업적으로 귀가 예민한 나로선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깃발을 든 가이드의 뒤를 졸졸졸.
가다가 말고 화장실을 간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고ㅡ 
다시 또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졸졸졸.

정말 딱 질색하는 단체관광에다가 하늘은 계속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하면서 이미 옷은 축축하고, 발은 구정물 투성이.

투어를 시작해보기도 전에 주차장에서만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나니 벌써부터 지쳐있었고 

출발하기 전에 언니가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왔다며 주섬주섬 가방 깊은곳에서 꺼내서 선물해줬던 예쁜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최선을 다해 화장을 하면서 오늘도 긍정적으로, 최대한 즐겁게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했던 다짐은 이미 저기 땅바닥에 쳐박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원망스럽게도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계속 반복했고 우비를 한 3번쯤 입었다 벗고나니 드디어 유적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가이드는 이 곳이 참파왕국의 유적으로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으며 시바신에게 바쳐진 사원인데 
시바신은 눈이 세개고, 손이(??) 엄청많은 신인데 하나의 눈은 태양이고 하나는 달이고... 

그의 설명은 전문적이며,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들로 가득했던 것 같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이드의 발음은 영어도 베트남어도 아닌 제 3의 언어를 창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였고, 
그 와중에 그의 말은 엄청나게 빨랐기에 그의 말 중에 80%이상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려 하면 할 수록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나는 정신줄을 잡는데만 최선을 다해야했다. 

여기는 왕의 계곡이며, 옛 왕조들이 이곳에 뭍히기도 했었던 곳이지만 
그보다는 시바신을 모시는 종교적인 사원이자, 전쟁당시 폭탄들을 숨겨두었던 군사적 요충지였고 
전쟁을 하면서 유적의 일부가 유실되어서 일부는 복구를 했지만 아예 복구를 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고, 
복구하는 과정에서 벽돌의 색깔이 일부분 달라지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에서야 알게되었다. 

어쩌면 어릴 적 국보급 유적지에 갔을 때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도 이런 게 아니였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국내의 유적지도 조금 더 공부를 하고 다시 가보고싶어졌다. 

여행지보다 중요한 것은 기분.


미선은 초록과 사람이 가득한 곳이였다. 생각보다 예쁜 유적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고,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없이 오롯이 찍으려하는 것만 나와있는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라 
어떻게든 사람이 나오지 않고 미선만 있는 사진을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러기엔 단체 관광객이 너무 많았다.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유적지 앞에서, 안에서 길을 막고 셀카를 찍어대는 등.. 

사실 언니나 나의 여행 스타일은 한적한 곳, 한적한 시간대를 골라서 최대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던지라 
사람이 많다못해 미어터지고, 관광버스 수십대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미선투어에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인간인 나는 점점 기분과 체력이 다운되고 있었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내 기분은 동행인인 그녀에게 빠르게 전파되었고, 결국 언니는 화를 냈다. 

함께하는 여행에서 감정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에, 힘들거나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고 최대한 즐겁게 보내자고
여행을 떠날 때마다 다짐하고 약속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감정에 솔직해지기가 어려워진다.
영향을 주고 싶지 않으니 티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녀는 내 기분에 잠식되어 있으며, 
그렇게 서로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화 없이 일정을 소화하다가 결국 가장 나쁜 방법으로 감정이 표출되어버림을 항상 잊곤한다. 

빠른 사과와 반성을 하고, 다시금 언니와의 여행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하니 

앙증맞게 피어있는 들꽃이, 황토인지 노랑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색의 벽돌 사이에서 존재감을 뿜뿜하는 귀여운 초록풀이 
이국적인 유적지의 모습과 군데군데 있는 조각상들이, 하늘이 개이면서 점차 푸르게 물들어가는 높은 하늘이

그리고 전쟁의 여파로 조금은 부서지고 유실된 모습마저도 기껍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고, 점점 미선이 마음에 들어왔다.

어느새 하늘이 완전히 개이고,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손에 들고있던 우산을 내렸고 나는 지긋지긋했던 태풍과 폭우 뒤에 찾아온 햇살이 반가웠다. 

저기 아랫쪽에 계곡인지 개울인지 알 수 없지만 물이 흐르던데, 뒤쪽에 산이 있으니 완벽한 배산임수구나. 
저기 있는 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해가 뜨긴 했는데 또 비가 오면 어쩌지? 
맨 처음 갔던 곳은 유적 사이사이에 들풀이 엄청 귀여웠는데 여긴 풀은 좀 적네, 특별한 이유가 있는걸까? 
유적지 군데군데 색깔이 다른 돌이 있는데 저건 왜 그런걸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짧은 영어실력과 수많은 사람들, 정해진 투어시간은 내 발목을 잡았고 조용히 질문을 삼켰다. 

길면서도 짧았던 미선투어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가이드가 사람들을 한군데에 동그랗게 모으고는 드래곤! 이라고 말했고,
그곳엔 보호색을 띄고 꼭꼭숨어라를 하고 있는 작은 도마뱀이 있었다. 

바위 위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귀여운 도마뱀마저 마음에 든다.

다음번에 혹시라도 또 호이안을 찾게 된다면, 투어패키지를 빼고 한적할법한 새벽시간에 다시 들러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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